오늘 퇴근길에 나를 너무 분노하게 만든 뉴스를 접했는데, 그 뉴스는 다름아닌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조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노태우의 629선언을 이끌어냈던 87년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91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 하고,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뉴스가 나온지 2시간이 지났지만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 91년에 대한 기억이다.

본 블로그는 IT전문 블로그, 범위를 좁혀서 인터넷전화(VoIP) 전문 블로그를 지향하지만, 이 소식을 접하고 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91년 당시 나는 혈기왕성한 대학생이었고, 그 사건 현장에 있으면서 깊은 좌절을 맛보고 지금 내가 가진 가치관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그 사건을 전하고자 한다.


도대체 91년에 무슨 일이 있었나?

91년에 1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경찰 쇠파이프에 맞아 죽거나, 자신의 몸에 기름을 뿌려 분신해서 죽어갔다. 도대체 91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91년 2월 27일 명지대 발전위원회가 결렬되고 학교측이 등록금을 일방적으로 고지하자, 명지대학교 총학생회는 곧바로 등록 연기를 결의하였다. 3월 16일 학교당국의 불성실한 모습에 자극을 받은 학생들은 민주계단에서 집회를 갖고 총장실 무기한 폐쇄, 총장실 집기를 본관 앞으로 들어내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교당국에서는 학생회 간부 몇 명을 제적하겠다고 협박을 하였다.)
3월 22일 총학생회 진군식 이후 민주적 등록금 책정과 언론탄압분쇄를 위해 학내 집회와 부총장실 점거농성, 삭발, 혈서투쟁 등을 진행하던 중 상명여대(현 상명대) 학원자주화 집회에서 지지, 연대 연설을 하고 돌아오던 박광철 명지대 총학생회장이 불법 연행되었다. 이 사실을 안 명지대학교 학생들은 즉각 투쟁을 전개하였고,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경찰은 페퍼포그 3대와 사복전경 10개 중대 1,200여명을 동원하여 학교 주변을 둘러싸고 무력 진압을 예고하였다.
4월 25일 12시부터 6시까지의 시위에 이어, 4월 26일 12시 민주계단에서 22명의 여학생이 서부서 항의방문투쟁 출정식을 갖고 서부서로 향했고, 3시 '학원자주화 완전 승리와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및 총학생회장 구출을 위한 결의대회'를 치른 이후 전경과 대치하였다. 경찰은 유인작전을 구사하며 시위자를 검거하기 위하여 골목까지 백골단을 배치하면서 폭력적인 강제 진압을 하였다. 바로 이 과정에서 강경대씨가 백골단들로부터 집단 폭행 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4월 27일 연세대에서 1만여 명의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모여 '폭력 살인 규탄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결의대회'를 가졌다. 그리고 4월 29일에는 박승희(전남대)씨가 분신했고, 5월 1일에는 김영균(안동대)씨가, 5월 3일에는 천세용(경원대)씨가 분신하였다. 5월 4일 16만 명의 학생시민이 모여 백골단 해체를 외쳤으나 4월 6일에는 박창수씨가 안양병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으며, 8일에는 김기설(전민련 사회부장)씨가 서강대에서 분신하였다.
5월 9일에는 전국적으로 30여만명이 모여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국민대회를 가졌다. 5월 14일에는 강경대의 장례행렬이 경찰에 의해 막힌 채 밤 10시까지 투쟁을 전개하다가 연세대로 운구를 옮겼다. 5월 18일 2차 장례 중 연세대 앞 굴다리 위에서 이정순씨가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하였고, 19일 새벽 운구행렬이 광주에 도착했으나 경찰이 광주 진입을 막았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의 투쟁으로 도청 앞 노제를 사수하고 마침내 5월 20일 망월동 묘역에 강경대씨의 시신은 안장되었다.
(출처 : 성공회대학교 사이버NGO 자료관)

위 글에서 본 것처럼 처음 시작은 학내민주화 운동으로 촉발된 명지대학교 내 시위에서 비롯되어 경찰의 무리한 강경진압으로 인해 강경대 열사가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다. 이에 학생들이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는데 경찰의 강경진압은 계속 되었고, 학내 민주화 투쟁으로 시작된 학생들의 투쟁은 점점 커져서 정권퇴진운동으로 발전했고,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국민들도 참여하는 범국민투쟁으로 전개되었다. 이 와중에 수 많은 사람들의 분신이 이어지고 김귀정 열사는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쫓겨 충무로 골목에서 경찰의 폭력에 죽음을 맞았다. 필자도 이 당시 충무로 골목에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진압이 얼마나 살벌하게 진압되었는지..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를 참고하시길..

 
(신촌에서 있었던 강경대 열사 장례식)

87년 이후 흔히 말하는 넥타이 부대까지 나서서 정권퇴진운동을 벌인 것이 1991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와중에 터진 사건이 바로 '강기훈씨 유서 대필 사건'이다. 수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 항거했고, 김기설 열사가 유서를 남기고 분신을 했는데 정권에서는 강기훈씨에 의해 유서가 대필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전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91년 정권퇴진운동은 이 사건을 계기로 급속히 쇠퇴하게 되는데, 이 때 활약한 사람이 바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이야기했던 김지하 시인, "죽음을 사주하는 어두운 세력이 있다"고 분신의 배후로 빨갱이를 지목했던 서강대 박홍 총장이 있었다.


유서대필 vs 유서대필 조작,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나?

91년 당시 강기훈 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감정 결과 하나로 인해 구속되었는데, 이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이나 일반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당시 민주/진보세력은 양심이라는 덕목이 최고였고 국민들도 대부분 인정하고 있었기에 북한의 사주를 받아서 분신을 하고, 분신을 종용한 사람이 유서를 대필했다는 사건은 그 자체가 충격이었고, 민주/진보세력는 기나긴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 이는 92년 대선 결과에 그대로 투영되어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압승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이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91년 당시에도 조작설은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유서대필이라는 사안 자체가 워낙 충격적이라 조작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점점 멀어져갔다. 오늘 보도된 내용을 보면

"진실화해위는 이날 오후 설명회를 열고 “분신 자살한 김기설씨의 필적이 담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을 새로 발견해, 검찰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사건 자료·증거물과 함께 국과수 및 7개 사설 감정기관에 필적 감정을 의뢰했다”며 “모든 기관에서 유서의 필적은 유서 대필 혐의를 받았던 강기훈씨의 필적과 다르고 김씨 본인의 필적이라는 감정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객관적인 감정을 위해 문서감정실 감정인 5명 모두 참여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진실화해위는 덧붙였다." (한겨레신문)

16년이 지났지만 늦게라도 진실이 밝혀진 점은 너무 다행이다. 하지만 유서대필 장본인으로 지목되어 고통 속에 살아왔을 강기훈씨와 거리를 뛰어다니며 민주화를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응어리는 어떻게 풀 수 있겠는가? 이번 결정을 내린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법원에 재심을 권고했다고 하는데.. 법원에서는 이미 끝난 재판 결과에 대해 번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91년에 유서대필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대필 의혹이 불거졌을 때 국민들이 동의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가정을 허락하지 않을뿐 아니라 되돌릴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역사가 준 교훈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보수진영의 압도적 우위 속에 이명박/이회창 후보가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고, 흔히 말하는 민주/진보세력은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형국이다.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핵심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는 것인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이 잃어버린 10년 세월 동안 군사정권 시절 자행되었던 수많은 반인권적인 사안에 대한 바로잡기가 있었다.

해방 후 50년 동안 한나라당의 가치 기반인 보수 정권이 권력을 잡았고, 그 기간 동안 수 많은 인권 탄압이 자행되었고, 50년 동안 수 많은 보수관료/학자가 쉴새 없이 배출되었고, 철옹성에 가까운 보수언론 집단도 형성되었다.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지만, 유서대필사건이 없었다면 잃어버린 15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권을 잡아놓고도 인재풀이 없어서 국정 운영이 미숙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자행되었던 반인권적인 사건에 대해서 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나는 더 좋다.

16년전 조작 사건의 전모가 오늘에야 밝혀졌듯이 역사는 후대에 다시 평가를 받아 완성된다. 올 12월에 우리가 행한 선택은 20년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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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땅개
    2007.11.14 14:01

    당신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무슨일을 했소이까??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시요~~~ 젊은 똥개들이여~~~

  3. 뭘몰라
    2007.11.14 14:05

    지금 그 결론은 정확한가? 아니 의심스러워 좌빨들이 하는짓은
    도저히 믿을수도 믿어서도 안되지 노태우때보다 더 악랄한짓을
    빨씨들이했다는거 다안다 진실 화해 어쩌구 느그들끼리 짜고치는 고스톱이 아니겠는지 교묘한 수법으로 또다시 어떻게 해보려고...그만두시지

  4. 응무소주
    2007.11.14 14:11

    무조건적인 선악 구분, 흑백 구분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기에
    제가 윗글에서 문제 재기를 하는 것 입니다.

    유서가 대필이 아니었다면 강기훈씨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음은
    두말할 나위없이 자명해 지는것 입니다.

    강기훈씨에 대한 심적,물적 고통에 대한 피해는 당연히 국가의 책임이고 그 책임은 곧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요 몫입니다.

    나는 나일뿐이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나와 전혀 무관한 객체가 아니라는 뜻 입니다.

    아울러 그 사건이 의도한 조작에 의해 대필 누명을 씌운 사건이었다면 재심을 통해서 당연히 조작에 관계된 사람들을 명명백백히 밝혀 내고 처벌하여야 함에 마땅히 동의 합니다.

    정의를 세우는 그 처벌의 주체또한 정의감으로 뭉친 우리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되며 우리들이 포함된 대한민국이요, 정의를 숭상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질서가 그들을 응징 하는것 입니다.

    그러나 지금에서라도 다행히 누명이건 오인이건 조작이건에 의해서 억울히 잃어버린 세월과 명예를 회복하게 된건 다행이지만
    스스로 유서를 남기고 분신한 김기설님을 비롯한 그 사건 당시의 분신 열사들의 존재감을 이야기 하는것 입니다.

    그 유서대필 사건(혹은 유서대필 조작 내지는 혐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분신 자살에 대한 순수성이 의심을 받게 되었고 그러한 의심은 무 이성적으로 욱 하는 혈기와 정의감에 의해 감성에만 휩싸인체 도미노 현상처럼 번져가던 시점이었습니다.

    김기설님이 분신후 강기훈씨가 유서 대필자로 지목되어 사건이 대서특필되며 일파만파 됨으로써 도미노처럼 번지던 분신 자살에 대해 이성적으로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부인할수가 없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이 유서대필 사건이 있은 이후 분신이 그쳤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운동권의 집행부로서 그렇게 분신이 그쳐지고 민주화 운동이 주춤해진 사실에 대해 안타까울지 몰라도 그렇게 분신 자살이 멈춰짐으로써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린 대학생을 둔 부모님들이 더 많았다는 뜻 입니다.

    아울러 그 도미노가 한동안 더 지속되어 졌더라면 민주 항쟁의 지도부가 아니라 일개 군중 학생에 불과 했던 우리들도 욱하는 심정의 한 사람이 될수도 있었고 또한 그랬던 당사자들은 오늘날 모두 이자리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단언컨데 그 당시의 분신 자살은 일종의 유행처럼 번져 나가던 도미노 현상과 유사 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성보다 감성이 우세 하던 시절이었던것 같습니다.

    분신자살이 아닌 다른 투쟁 방법도 많았지만 그때는 극단적인 분신이 너무 격하게 난무했다는게 그당시로서의 저의 강한 느낌이었음이 세삼 또렷해 집니다.

    그당시 김지하님의 죽음의 굿판을 집어 치워라라는 글로서 분신에 경종을 울리던 글이 있었던 것으로 막 생각이 나는군요.

    • 음...
      2007.11.14 19:20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님의 글 많은 부분 동의합니다. 많은 분노와 절망이 있었고 바라지 않는 슬픈일들이 많았죠.

      그러나 유서대필 사건으로 분신이 끝나고 그것이 실속이었다는 말은 참 슬픈 표현이라 생각되네요. 실속은 다른 이들이 가져갔겠지요. 그리고 돌아가신 분들이 남긴 것은 제 마음속에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운동권의 집행부라는 사람들도 분신이 그치고 운동이 주춤해진 것에 대해 안타까워 했을 것이라 했는데, 그 때 주변 이들이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까 서로 염려했던 기억이나네요. 분신이 그치어 운동이 주춤해져서 안타까워 했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남겨 둔 채 운동이 주춤해지는 상황에 대한 절망감으로 안타까워 했지요.

      그리고 온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재조사를 해야 알 수 있다. 라는 말이나, 정의를 숭상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질서가 그들을 응징하는 것이다. 라는 말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신 분이라 무의미한 말이란 것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전제가 없거나 있을 수 없기 때문이죠.

      16년이 지난 세월 그리고 이제 40대라 하신 님의 기억과 세상을 보는 방식도 소중합니다만, 자칫 옳지 않은 것과 타협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오해가 생길까 염려됩니다.

      김지하의 "죽음의 굿판을 집어 치워라" 마지막은 절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원래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였는데 조선일보에서 입맛에 맞게 고쳐 나왔던거라죠. 절망으로 죽지 말아라와 '욱'하는 심정으로 개인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지 못해 죽지 말아라는 이해의 깊이가 다를 것 같습니다.

  5. Favicon of http://notcalled.egloos.com BlogIcon 안불렀슈
    2007.11.14 14:37

    유서대필 조작건으로 인해 '분신'정국이 중단된 것은 어느정도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노태우 정권의 억압적 관리'가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 그리 많은 분들이 분신을 결심하게 되었을까요?
    이제라도 유서대필의 증거물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발표된 것에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6. 말이 좋아,진보민주지?
    2007.11.14 14:39

    더 하더만,김영삼 이후로 민주랍시고,진보랍시고 등장해서(물론 사기나 치고 구라나 쳐서 된 정권)깽판칠만큼 쳤어니 이제는 그쪽에서 하는 어떤 말도 공감이 안가니....
    그 잘못은 보수한테있고,조중동에게 있나?
    아니면 진보,민주꼴통들에게 있나?
    대통령만들어준게 좌파떨거지들 먹고 살게하기위해,공무원 늘려서
    부의 분배를 이루기위한것인지??
    지들 눈깔은 지들이 찌른것이지 국민은 죄없다..

  7. 기인숙
    2007.11.14 15:14

    그때 당시를 기억해보면...뉴스에 나오는 필적은 분명 달라 보였다...그런데 이번에 강기훈씨 인터부를 보면 당당한 것을 보니...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아마도 죽을 놈이 죽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죄의식을 갖지 않을 것 같다...배신자였거나 뭐 그런...누군가가 죽었고 급조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만약 그 전에 죽겠다고 말한 적이 있고 추락사했다면, 수사를 완결시키지 위한 과정으로서 그러한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증명할 수 없는 부분에 뭐라 하는 건 문제다...그로인해 감옥에 가고, 그만한 형벌을 격었으니...친구의 죽음을 지키지 못한 벌은 다 받았다고 본다...진짜 살인자는 그러한 갈등은 만든 사회체제라 할 수 있을 것...

  8. 남궁정
    2007.11.14 15:17

    왜 이리 개념들이 없어. 여기서 좌빨꼴통 이딴 단어가 왜 나오냐.

  9. 박준홍
    2007.11.14 15:24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10. Tyler Lover
    2007.11.14 15:27

    딱 보니 알바티가 나는군요... 말이좋아,진보민주지...

    꼴통... 어따대고 지적질인지...참...

    김영삼과 딴나라가 그렇게 잘해서 나라가 그 모양이 됐고많은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그랬는지...

  11. 좋은글.
    2007.11.14 16:00

    감사합니다.~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관심없이 지나갔던 일들인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네요.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있는 놈들이 다 잡고 있으면서, 그자리를 자기 자식들에게 온건히 물려주려고 온갖 짓을 다하는 사회네요. 한심한 이 나라, 세상을 바로보고자 노력하면 좌파, 빨갱이라 몰아부쳐 가볍게 만드는...

  12. 4월이야기
    2007.11.14 16:05

    항상 91년의 투쟁이 잊혀진 것이 가슴아팠다
    강경대 열사로부터 시작된 투쟁으로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던 나는 87년은 이야기 하면서 그많은 열사가 나오고 2만의 시민이 대구를 누볐던 그때가 잊혀진게 서러웠다. 유서대필사건이 밝혀진것이 고맙지만 다가온 대선의 정국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말도 안되는 후보들이 저들끼리 옥신각신하는 동안 민주후보는 당선가능성은 커녕 내부조차 어지럽기만 하고, 또다시 비례대표 생각에 찍어야 하는지....

  13. 하늘
    2007.11.14 16:14

    그때 누가 정권을 가지고 있었나?
    온갖 사기와 음모로 정권 잡아 온 한나라당
    그들에게 다시 정권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니다.
    경제 경제 하지 말라
    그들이 정권 잡으면 서민들은 더 못살게 된다.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화될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14. 386세대
    2007.11.14 16:35

    그러게요..정말 큰일입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니..겨우 찾은 10년이었는데..
    이제 우리는 다시 그 기나긴 투쟁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되는건가요..
    어떻게해서든 그것만은 막아야하는데..
    정말 걱정입니다...

  15. 빈배
    2007.11.14 16:41

    우리나라국민은 왜 과거의정권이 저지른 천인공노할일을 금방잊어버리고 또다시 저들에게 정권을맡기자고요?에라! 더러워서 이민을간다.

  16. 오대장성
    2007.11.14 16:56

    박홍이란 사람이 글을 읽다보니깐 미워지네요...아주 인간 말종이구만....

  17. 신성철
    2007.11.14 17:51

    4050대 비슷한 연배님..사회 정의를 많이 잊고 살아 오진 않았는지요! 살기 바뻐 우리아이들에게 너무 권력과 돈의 아집에 빠지는 삶을 남겨 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반성합니다.비록 제 아이는 초등학생이지만 사회전반에대해 알려주려합니다.위 이야기도 한 예제가 되겟죠!

  18. 안세희
    2007.11.14 19:03

    87년 ..지금의 아내를 그때 만났지만 데이트보다도 시위에 참가를 더 했던 기억이 납니다.그핸 아마도 거의 일을 안하고 시위만 해서 생계 문제도 걱정스럴 만큼이나. 강기훈 대필사건으로 정말 언론에서 요란했지요.지금이라도 진실이 규명되어 다행입니다.당시의 투쟁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유가 있는것이지요.이번 12월 대선이 걱정이 됩니다.역사를 되돌리려는 세력의 지지표가 많다는 암울한 이야기들때문에 우울하고....

  19. 부산갈매기
    2007.11.15 00:03

    당시 유서대필이라고 희대의 사건으로 신문들이 장식할때 하도 궁금해서 직접 신문에 난 글자들을 회사 복사기로 여러번 최대한 확대해 보았는데 내가 봐도 유서와 강씨의 글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걸 회사사람들에게 보여주니까 전부다 정말 다르다고 했는데 결국 강씨는 형을 살고 말았죠. 참 우습기도 하고 국과수라는 사람들이 어째 회사에 있는 복사기보다 못한 장비를 가졌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문서검증한 국과수 실장인가 김형X 라는 사람이 결국은 다른 민사사건의 엉터리 검증을 하고 돈받아 먹다 감옥으로 가더군요.그사람이 또 조선일보인가에 나와 그때 검증은 맞다고 주장하길래...참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사람은 문서조삭을 한두번한게 아니고 여러번 해먹다가 들어간 사람인데 그 검증을 누가 믿겠습니까?

  20. 가을신사
    2007.11.15 08:59

    그당시 운동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유서 대필 했다고 안믿었습니다
    그때야 검 경찰이 사건 조작이 자기들 업이었으니
    어째든 유서대필 의혹 사건으로
    운동권이 몰락하는 가장큰 계기가 된게 안탑까운 일입니다....

  21. 어려워요
    2007.11.15 12:35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82년생으로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유서대필조작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이제서야 정확히 알게 되네요. 그러고보면 우리사회에 '조작'과'진실'이 어디까지 얽혀있는 것인지...